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이게 아닐까.
AI 번역 · 영어 원문
삶에는 거꾸로 작동하는 법칙이 있다.
어떤 것들은 예상한 대로 작동한다. 더 강해지고 싶으면 더 무거운 것을 들어라. 더 배우고 싶으면 더 공부해라. 더 벌고 싶으면 더 영리하게 일해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일부는 정반대로 작동한다.
행복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쓸수록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더 의식한다. 자신감을 느끼려고 필사적으로 애쓸수록 자기 안에서 불안의 흔적을 더 찾아본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필요로 할수록 거절당할까 봐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더 세심하게 감시한다. 통제를 필요로 할수록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이는가?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내게 없다는 증거가 된다.
자신이 충분히 행복하지 않다고 믿는 부분이 없다면 필사적으로 행복해지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믿지 않는다면 필사적으로 인정을 구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챌까 두렵지 않다면 자신감 있어 보이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긍정적인 것을 쫓을수록, 그 반대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잠들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잠은 반드시 자야 한다고 절박해지기 전까지는 별 노력이 필요 없다. 그런데 누워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잠들어야 해. 왜 아직 깨어 있지? 꼭 자야 하는데.” 그러다 갑자기 잠들려는 노력이 오히려 잠을 깨우는 원인이 된다.
삶의 어디에서나 이런 일이 일어난다.
불안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면, 이제는 불안하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해진다.
실패를 필사적으로 피하려 하면, 실패가 너무 두려워져 성공에 필요한 위험조차 감수하지 못한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면,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고쳐 쓰기 시작한다. 역설적으로 더 호감 가는 사람이 되려다 진실한 자신을 잃고, 사람들이 좋아했을지도 모를 바로 그 부분까지 망가뜨리곤 한다.
모든 것을 필사적으로 통제하려 하면, 통제할 수 없는 모든 일이 자신이 통제력을 잃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것이 역설이다.
긍정적인 것을 향한 욕망이 부정적인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이 법칙은 반대로도 작동한다.
창피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갑자기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있다.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갑자기 성공에 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갑자기 나 자신으로 살아갈 자유가 생긴다.
통제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갑자기 정말로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고통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면, 고통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괴로워하는 일을 멈춘다.
이상한 진실은, 우리가 원하는 많은 것들은 그 반대를 경험할 마음이 생겨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두려움을 허용하지 않고서는 용기를 가질 수 없다.
불안과 창피함을 허용하지 않고서는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불확실성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동안에는 진정한 인정을 얻을 수 없다.
긍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을 받아들인 반대편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답은 원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그것 없이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행복을 원하되, 불행할 수도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여라.
성공을 원하되, 실패할 수도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여라.
인정을 원하되, 미움받을 수도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여라.
확신을 원하되, 모를 수도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여라.
괜찮아지려면 반드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순간, 그것의 부재가 나를 지배할 힘을 얻기 때문이다.
때로는 수면에 닿으려고 더 격렬하게 몸부림칠수록 더 빠르게 가라앉는다.
때로는 나를 물속에 붙잡아 두는 것이 물이 아니라, 그 물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시도다.
때로는 물이 나를 떠받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잠시 물과 싸우기를 멈춰야 한다.